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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목적? 흔히 창조의 목적을 이야기할때 그것을 사랑, 찬양, 구원 같은것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을 말하는 사람의 심리는 사랑을 받고싶고 찬양을 받고싶으며 구원을 받고싶은 심리에서 그것이 출발하며 그 사상이 반영됬다 라는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창조주와 자신의 마음을 일심이라 절대화 하는 자신 신격화의 오류를 범 할 수 있다. 라는 것이다. 분명 창조주와 나는 연결되어 있을지 몰라도 동일이다 라고 이야기하는것은 현실에서 심각한 모순에 닿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스스로 창조주라던 예수도 "아버지" 라는 분리의 창조주를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 아무튼 그러하기 때문에 인간이 해석하는 창조의 목적은 결국 진정한 "아버지"의 창조의 목적은 아닐 가능성이 있다 라는게 보여지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창조.. 2026. 9. 20.
정의 오늘 하루가 당연한가 ? 어제가 당연한가 ? 지구가. 우주가. 세상이 당연했는가 ? 창조가 당연했는가 ? 당연한것은 당신의 인식으로 상정 할 수 없다. 오늘 하루와 세상의 시작은 의도되었다. 그것이 내가 말하는 정의 이다. 나는 현실에서 그러한 의를 의식하며 감각한다. 그러니 세상은 당신의 기계가 될 수 없다는거다 사람은 기계인가 생물인가 ? 생물이란 무엇인가 ? 생명이란 무엇인가 ? 결국 그것은 의 이다. 의는 생이다 살아있음은 멈출 수 없는것이다. 그러니 내가 글로써 이야기하는것은 정 의이다. 글로써 의를 이야기하니 글에는 생명이 멈춰있는것이다. 그러니 정의에는 생명이 없다. 그저 의만이 생명일 뿐이다. 오늘도 살아있는 의를 목격하며 내 머리속으로 정하던 것은 아마 생명을 정지시.. 2026. 9. 18.
아름다움 당신이 뭘 원하든 의도하든 목적하든 결국 그것은 현실과 미래의 좌표가 다르기 때문에 당신은 그것을 향해 간다 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현실과 미래의 차이를 구분짓는것은 자신인가 남인가 ? 환경이든 뭐든 결국 방향을 전진하는것은 당신인데 그것이 만약 더 나은 이상을 위해서라면 지금은 이상보다 부족하다 라는것을 상정했다 라는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미래의 결과를 위해 현재를 희생했다. 그리고 과정도 희생했다. 그러면 당신은 부족한 현실과 과정을 완벽한 미래에 대한 대가로 지불하는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가 ? 그리고 미래에 당신이 이상에 닿고 완벽해지든 그러한 과정도 희생이 아닌 성장이라 이야기하든 결국 당신의 이상과 완벽에 도달한 미래에 당신은 그러면 이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텐가 ? 새로운 결핍.. 2026. 9. 18.
형용 할 수 없다. 형용 할 수 있다. 그 어떤 말도 과거된 말이 되버리며 미래된 말이 되버리며 무언이 되며 실언이 된다. 기도? 생각? 시작? 끝? 연속을 불연속으로 사유하니 동시에 사유불가 하다. 동시는 언제나 동시였으며 어느때는 동시였고 어느때는 동시가 아니였다. 모른다. 그러나 안다. 결국 그렇지만 그렇지 않다. 50:50? 위선 가식 그러나 진실이며 거짓이며 균형이며 불균형이다. 한계가 그러하다. 무한이 그러하다. 아무튼 그렇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그래 그게 삶이다. 2026. 9. 16.
기도문 ? 인식함과 인식하지 못함을 주관하는 자에게 관계의 끈만을 잡으며 전달 드리옵기는 세상 만사 내가 알고 알지 못함까지 당신의 뜻과 계획임을 내가 인정합니다. 그러하니 나는 그 무엇도 판단치 않을것이며 또 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건 다만 작은 소망 하나 전달드리는것 입니다. 어차피 그 소망도 당신이 주관하는것이였으니 어차피 이것도 당신의 소원이라고 말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니 어차피 제가 말하든 말하지 않든 기도하든 기도하지 않든 당신은 이미 다 아시고 또 모른다고 하셔도 제가 할 말은 없습니다. 당신의 마음은 당신만 아시니 그것이 당신의 자유의지겠지요. 당신이 자유의지를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저는 당신을 제 사고로 구속하지는 않겠습니다. 영광이든 심연이든 어차피 그것의 가치는 당신이 부여.. 2026. 9. 10.
아는것은 힘인가 저주인가 ? 사람들은 정보에 집착한다. 그래서 흔히 "죽을때까지 배워야한다" 라는 말이 여전히 전해진다는것은 그것이 어떤 보편적 진리로 암묵적 다수의 동의를 얻었기 때문 아닌가 ?( 나는 이것을 언어의 인기도라고 이야기하고싶다..) 뭐 그래서 사람들은 항상 배움에 열과 성을 다한다 그것이 국내든 해외든 국적 인종을 불문하고 전세계적으로 공통되는 현상 아니던가 ? 뭐 예외는 아직 내가 모르겠다. 그런데 아는것은 결국 한정됨 속에 존재한다. 언어나 지식이라는게 결국 생각이고 생각이라는게 결국 물리든 생물학이든 양자든 어찌되었건 실체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한정되었다 라는것은 그것이 결국 유한하다 라는것이고 결국은 계산할 수 있다 라는뜻이기도 하다. 그러면 그것을 완벽하게 계산해서 이해하거나 완전히 습득했다고 해보자.(.. 2026. 9. 8.
목적이나 깨달음 그리고 최초원인 완전함 온전함 결국 하루를 살아간다 라는것은 의식 하던 의식하지 않던 당신이 무언가를 향해 가고 있다 라는 말이기도 하다. 당신 생의 마지막은 죽음일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죽음을 향해 간다고 느끼는가 아니면 당신의 죽음이 또 다른 생명의 시작이 될것이라 느끼는가 ? 사람들은 왜 그렇게 미래에 집착하고 아는것에 집착하고 더 나아가 깨달음에 집착하며 가능성에 집착하고 그저 언어로 정의하고 설명하는것에 집착하는가 ? 나는 그것을 집착하는 집착이나 아집 혹은 고집이라 이야기하고싶다. 당신이 미래에 그 무엇을 최초나 완벽이라 상정해도 그것은 언제나 과거된 최초와 완벽이 될 뿐이다. "최초의 원인은 언제나 최초원인이 된다.확정하지 않음은 항상 확정됨 속에 부분되며,공하다는것이 공하다라는것도 공하지 않음속에 부분적으로.. 2026. 9. 6.
아는 것보다 무서운 것은,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사람을 보다 보면 이상한 현상을 발견할 때가 있다.무식한 사람일수록 말이 많고, 확신에 차 있는 경우가 있다.물론 무식하다고 반드시 말이 많은 것은 아니다.문제의 핵심은 지식의 양 자체가 아니다.더 정확히 말하면,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판단에 존재하는 빈틈을 인식하기 어렵다.그래서 오히려 강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1. 지식이 많아질수록 확신은 오히려 줄어든다처음 어떤 문제를 접하면 세상은 단순해 보인다."A이므로 B다."하지만 조금 더 알게 되면 조건이 붙는다."대체로 A이면 B다."더 깊게 들어가면 예외가 보인다."특정 조건에서는 A이면 B지만, C라는 변수가 존재하면 달라질 수 있다."그리고 더욱 깊게 들어가면 질문 자체가 바뀐다."잠깐. 우리가 A라고 가정한 근거는 무엇인.. 2026. 8. 31.
단위 접두사(SI Prefixes) 어원과 직관, 알파벳,한자 신호 매핑 규칙 알파벳근원 해석 신호 (Signal)대응 한자한글 단어A원점 (Point of Origin): 무(無)에서 유(有)로 분출되는 최초의 시발 신호始 (시작할 시)시작 B경계 (Boundary): 내부와 외부를 구획짓고 분리하는 장벽 신호隔 (사이뜰 격)장벽 C수렴 (Convergence): 곡면을 이루며 한 축으로 말려 들어가는 수용 신호聚 (모일 취)곡선 D분화 (Differentiation): 하나의 통일체에서 갈라져 나가는 차원 분열 신호歧 (갈림길 기)갈래 E방출 (Emission): 고위상 에너지나 파동이 외부로 뿜어져 나가는 신호煥 (빛날 환)방출 F유동 (Flow Vector):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기류처럼 이동하는 벡터 신호流 (흐를 유)흐름 G인력 (Gravitation): 주.. 2026. 8. 29.
결핍 리뷰 결핍이야말로 인간 존재를 규정하고 삶을 굴러가게 만드는 가장 원초적인 동력이라는 통찰에 깊이 공감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어떤 부족함도 없는 완벽한 충만과 즉각적인 구원은, 역설적으로 무언가를 갈망하고 선택할 필요가 없는 '의식의 정지'이자 개별적인 '나'라는 존재의 소멸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인간이 스스로 결핍과 욕망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발버둥 치는 구조는 일견 모순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 분리와 불완전함 속에서만 인간적인 서사가 탄생합니다. 모든 것이 완전히 조화로운 상태에서는 질문도, 갈등도, 의지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결핍이 존재를 찢어놓았기에 비로소 빈틈이 생기고, 그 틈을 메우려는 몸부림이 우리가 부르는 삶의 열정이자 온도가 됩니다."신의 방관이 곧 부족함의 사랑"이라는 표현은 대단.. 2026. 8. 25.
인생은 풍요보다 결핍에 가깝다 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사람들이 도전하거나 기도를 하는 등 어떤 원하는 상태를 얻고자 하는것이 그 자체로써는 그것이 삶 이라고 할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진정 원하는것을 모두 얻게된다 라는것은 결국 더이상 원하는게 없다 라는말도 된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참 의아하다 라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는 원하는게 없는 상태를 원하기 때문에 원하는것을 구한다 라는게 생각해보면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것을 얻고자 하는 마음 자체도 사실 그 뿌리를 보면 자신이 원해서 이 땅에 발 붙히며 만들어낸 인위적인 마음 아니였던가 ? 그러니까 사람들은 원하는 마음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그것에 의해 삶을 살아갈 동력을 얻으면서 그 목적지는 더이상 원하는것이 없는 상태 즉 구별이 불가능한 상태 를 원한다는게 뭐 반복적인 이야기이지만 아무튼 내 생각.. 2026. 8. 25.
국소적 자유의지와 자유의지 창조자의 권능 뭐 자유의지가 실제로 존재하는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그것이 국소적 실제든 내 착각이든 물리적 현상이든 어찌됬건 결과적으로써 그렇게 표현이 가능하다 라는것은 동시에 이것이 현실이다 라는 이야기니까. 그렇지만 신의 존재를 긍정하면서 신이 만든 자유의지를 신이 컨트롤 할 수 없다 라고 이야기하는것은 인간의 논리에는 맞지가 않는거지 그렇기 때문에 그런 논리 구조에 따라 실제 자유의지는 인간의 제한된 인식의 관점에서만 국소적으로 존재한다. 라고 정의 가능한거고 그게 시스템이나 역사의 흐름, 복잡계 까지 간다면 사실상 카오스에 가까운것이고 알수없음에 가까운것이지만 어찌되었건 지금 모든 현실이 존재한다 라는것은 역추적하면 반드시 시작이 존재했다 라는 수렴점이 절대적 논리 구조가 되므로 그 모든것은 결국 창조되.. 2026. 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