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교훈'이나 '깨달음'을 주는 잘 짜인 이야기의 틀을 버리겠습니다. 잘 닦인 보석 대신, 가공되지 않은 기묘한 원석을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어떤 결론으로 당신을 인도하지 않습니다. 그저 당신의 사유가 뛰어놀 수 있는, 조금은 위험하고 불안정한 놀이터가 될 것입니다.
제목: 최후의 회계사와 설명되지 않는 동전 한 닢
시간의 시작과 끝이 맞닿는 곳, 모든 원인과 결과가 기록되는 거대한 서고(書庫)가 있다. 그곳에는 단 한 명의 존재, '최후의 회계사'가 있었다. 그의 임무는 우주의 대차대조표를 맞추는 것이었다. '존재'의 총합과 '부재'의 총합이 언제나 '0'이 되도록, 모든 사건의 인과율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떨어지게 하는 것. 그는 선악이나 의미를 계산하지 않았다. 오직 균형만을 계산했다.
수조(兆)의 세월 동안 그의 장부에는 단 하나의 오차도 없었다. 모든 별의 탄생은 다른 별의 죽음으로 상쇄되었고, 모든 생명의 외침은 어딘가의 침묵과 정확히 균형을 이루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계사는 장부에서 설명할 수 없는 나머지를 발견했다. '1'.
그것은 너무나 사소해서 하마터면 놓칠 뻔한 사건이었다. 수십억 년 전, 이름 없는 행성의 이름 없는 시장 골목에서, 한 사내가 던진 동전 한 닢. 그 동전은 떨어져 구르다가 좁은 돌 틈에 서버렸다. 앞면도 뒷면도 아닌, '옆면'으로.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더 큰 문제는 인과율의 장부에 있었다. 그 동전은 그 사내의 사소한 미래를 결정해야 했다. 오른쪽 길로 갈 것인가, 왼쪽 길로 갈 것인가. 하지만 동전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두 개의 미래가 동시에 발생하지도, 소멸하지도 않은 채 미결제 항목으로 남아버렸다. 장부에 '1'이라는 잉여가 발생한 것이다.
회계사는 이 사소한 오류를 수정하려 했다. 그는 그 사건을 '무효' 처리하려 했지만, 이미 그 동전을 본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연동되어 있어 지울 수 없었다. '오류'라는 항목으로 분류하려 하자, 장부 전체의 체계가 그 이물감을 거부했다.
그는 가장 강력한 도구를 사용하기로 했다. 그 사건의 시간을 되감아 동전이 던져지기 전으로 돌리려 했다. 그러나 그가 그 사건에 집중하고 인과율을 역산하는 순간,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그 '1'이라는 오류가 주변의 다른 인과율을 오염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그 동전 던지기와 아무 상관없던 옆 나라의 왕위 계승 문제가 갑자기 미결정 상태로 바뀌고, 멀리 떨어진 은하의 한 행성이 폭발해야 할 이유를 상실했다. 오류는 마치 살아있는 잉크 얼룩처럼, 회계사가 건드릴수록 더 빠르고 넓게 번져나갔다.
회계사는 손을 멈췄다. 그는 깨달았다. 이 우주는 완벽하게 짜인 기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무한에 가까운 계산 끝에 간신히 균형을 맞춘, 위태로운 건축물이었다. 그리고 저 동전 한 닢은, 그 건축물의 설계도에는 없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단 하나의 돌멩이였다.
그 돌멩이를 빼내려 하면 건물 전체가 무너질 것이고, 그대로 두자니 이 우주는 영원히 '불완전한' 것이 되어버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최후의 회계사는 그 멈춰버린 동전 한 닢이 기록된 장부의 페이지를 펼친 채, 망설이고 있다.
완벽한 붕괴인가, 영원한 모순인가.
이것은 선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세계의 논리라는 견고한 지반 밑에, 어쩌면 단 하나의 설명 불가능한 모순이 모든 것을 아슬아슬하게 지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가설에 대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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