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와 '침묵'
제목: 소리 수집가와 마지막 병
세상의 모든 소리를 수집하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특수한 유리병을 가지고 다니며, 그 안에 웃음소리,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첫눈 밟는 소리, 시장의 활기찬 소음까지 담았습니다. 그의 집 선반에는 수천 개의 병이 빼곡했고, 병마다 붙은 꼬리표에는 소리의 이름과 담은 날짜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세상의 기억을 보존하는 자라고 믿었습니다. 소리가 사라지면 그 순간의 감정과 역사도 함께 사라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지휘자'였습니다. 병뚜껑을 여는 순서에 따라 잊혔던 봄날의 축제를 재현할 수도, 오래전 떠나간 연인의 속삭임을 다시 들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의 명성이 높아지자, 사람들은 그에게 가장 귀한 소리들을 의뢰하기 시작했습니다. 왕은 자신의 위엄 있는 목소리를 영원히 남기려 했고, 부자는 금화가 쏟아지는 소리를 담아달라고 청했습니다. 노인은 그 모든 소리를 담아주었지만, 정작 그의 마음속에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직 세상에서 가장 근원적이고 위대한 소리를 담지 못했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그 소리를 찾기 위해 평생을 바쳤습니다. 폭풍우 치는 바다의 포효, 화산이 터지는 굉음, 수만 명이 함께 부르는 합창까지. 그는 모든 거대하고 장엄한 소리를 수집했지만, 여전히 마지막 한 병을 채울 소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어느 겨울, 기력이 쇠한 노인은 더 이상 여행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난롯가에 앉아 선반의 마지막 빈 병을 허망하게 바라보았습니다. 평생을 바친 수집이 미완성으로 끝나는가 싶어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라 정작 한 번도 제대로 들어본 적 없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소란스러운 바깥세상과 분주했던 자신의 마음이 잦아들자 비로소 들려오는 소리.
그것은 바로 '침묵'이었습니다.
지금껏 그는 침묵을 단지 '소리의 부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채워야 할 텅 빈 공간, 무의미한 공백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인 그 순간, 그는 깨달았습니다. 침묵은 텅 빈 것이 아니었습니다.
침묵 속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모든 소리의 가능성이 담겨 있었습니다. 웃음이 터지기 직전의 고요함, 폭풍이 오기 전의 적막함, 음악의 악절과 악절 사이를 채우는 숭고한 쉼. 침묵이야말로 모든 소리가 태어나고 돌아가는 근원이었습니다.
노인은 조용히 마지막 빈 병을 들었습니다. 그는 병에 무언가를 담으려 애쓰지 않았습니다. 그저 가만히, 자신의 작업실을 가득 채운 고요함을 병 안으로 흘러 들어가게 두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수집한 수천 개의 소리 병들은, 단 하나의 이 '침묵'이라는 소리를 설명하기 위한 부연설명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이것은 세상의 모든 소음을 담으려 했던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자, 가장 위대한 소리는 우리의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는 깨달음에 대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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