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시스템'
제목: 태엽 감는 장로와 멈춰버린 심장
계곡 깊숙한 곳에 자리한 마을에는 모든 것이 단 하나의 거대한 시계탑에 맞춰 돌아갔습니다. 시계탑의 태엽을 감는 것은 마을에서 가장 존경받는 장로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는 수십 년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 시계탑에 올랐고, 그의 손에 감긴 태엽의 힘으로 마을의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장로는 시계의 모든 톱니바퀴와 부품의 이름을 외웠고, 그 미세한 떨림만으로 날씨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그에게 시간은 오차 없는 기계의 움직임이었고, 삶은 그 시간을 정확한 칸으로 나누어 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게으름은 곧 '시간을 훔치는 죄'라고 가르쳤고, 아이들이 정해진 종소리에 맞춰 뛰노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했습니다. 그의 세계에서 '정확함'은 최고의 미덕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장로의 어린 손녀가 처음으로 시계탑에 따라 올라왔습니다. 수많은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장엄한 광경에 감탄하던 아이는 문득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저기 창밖에서 노래하는 새는 몇 시에 노래하기로 약속하고 우는 거예요?"
장로는 아이의 엉뚱한 질문에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얘야, 새는 시계가 없단다. 그저 마음 내킬 때 노래하는 것이지."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저기 언덕에 피어나는 꽃은요? 종소리를 듣고 피어나는 건가요?"
장로는 그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평생은 째깍이는 소리와 정해진 간격 속에 있었지만, 새의 노래와 꽃이 피어나는 순간은 그 어떤 톱니바퀴와도 맞물려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기계의 바깥에 존재하는, 예측할 수 없는 생명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장로는 처음으로 태엽 감는 것을 잊고 마을을 거닐었습니다. 그는 시계의 종소리가 아니라 바람의 소리를 들었고, 정해진 보폭이 아니라 발길 닿는 대로 걸었습니다. 그러자 지금껏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구름이 흘러가는 속도, 개미가 흙을 나르는 걸음, 이웃집 노인의 주름이 깊어지는 느릿한 시간. 이 모든 것이 시계탑의 시간과는 전혀 다른 리듬으로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평생 동안 공들여 온 것은 '시간' 그 자체가 아니라, 시간을 담아두려는 '그릇'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는 세상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실은 살아있는 세상을 차가운 기계의 박자에 억지로 구겨 넣고 있었던 것입니다. 완벽하게 작동하는 시계탑 안에서, 정작 그의 심장은 살아있는 시간의 흐름을 놓치고 멈춰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다음 날 새벽, 장로는 시계탑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처음으로 종이 울리지 않은 마을은 잠시 혼란에 빠졌지만, 이내 사람들은 당황하지 않고 창문을 열어 해가 뜬 것을 확인하고, 닭 우는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장로는 그제야 비로소 미소 지었습니다. 완벽한 시스템이 멈춘 순간, 마을은 진짜 시간을 되찾은 것입니다.
이것은 정확함을 믿었던 한 노인에 대한 이야기이자,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무수한 시스템에 대한 작은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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