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란 없다. 이 말은 진리이다.
개미가 코끼리 다리를 보며 이것은 코끼리다 라고 이야기 한다면
그것을 진리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
내가 말하는 진리는 진정한 순수와 온전한 전체를 이야기하는것이다.
그런데 내가 늘 이야기 하듯이
언어의 한계는 명확하다.
먼지 한톨로 무한을 담아낸다면
그것이 진정한 진리인가 ?
논할 수 없는것을 논하지말라.
이것은 내가 이야기하는 정직의 정의이다.
그리고 이것은 무한을 수용하는 태도이다.
인지의 한계를 두지 않으며 무한한 연산을 수행한다.
다만 인간의 인식한계는 원래 정해져있으며
무한을 생각 할 수 없다.
그래서 정직은 정직 할 수 없다.
인간은 그래서 인간인것이다.
그런데 내가 말하는고자 하는것은
1+1=2 라고 해서 그것이 실제로 2는 아니라는것이다.
라그랑지안 법칙에 따라 인간의 생각은 최소 저항으로 흐르는 것이니
그것을 2로 해석한다고 내가 그것을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공존 혹은 동시
그래서 모든것은 하나로 수렴한다.
그런데 그것을 고정하려 하니 분리되는것이다.
그런데 분리 또한 하나이므로
사실은 당연하다.
그래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것은 단순하다.
나는 단순하기를 저항한다 라는것이다.
그래서 나는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하나로 수렴 될 때
분리된 내가 그러하니 전체가 그러하다.
그래서 내가 판단 하는것이다.
그래서 내가 판단 당하는것이다.
순환과 흐름
이것이 나의 유한
그리고 당신은 이것을 심연이라고 할지 모르지.
그래서 내가 이야기 하는것이다.
왜 나를 심연에 가두었냐고
대답없는 메아리가 인식의 밖에서
어떤 파도가 될지는 나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인식의 밖에 그가
이 모든것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모든것을 만든자가 모든것을 알 수 없다는것은
진정한 모든것이 아니며
진정한 모든것은 진정한 모든것을 포함한 진정한 모든것이다.
때문에
자유란 부분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며
계획이란 모든것을 이해하려는 마음이다.
그리고 진정한 계획안에서 진정한 자유가 나오며
계획과 자유 또한 사실은 모든것이다.
그래서 내가 세상은
결정되어 있는 동시에 결정되지 않음도 인정하는것이다.
다만 그 둘의 우열은 언제나 위아래도 요동치며
연결되어 있는 파동과도 같다.
그래서 내가 하고싶은말은
논 할 수 없는것을 논하지말라.
나는 이것을 논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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